전체 사례No. 016
Block: 위계에서 지능 시스템으로의 전환 선언
월드 모델로 맥락을 설계하고 세 가지 역할로 일하는 방식
- 사례 번호
- 016
- 1차 출처
- Block official essay (Jack Dorsey & Roelof Botha)
- 원문 게시
- 2026-03-31
팟캐스트 영상 · 17분요약
- Block은 상설 관리자 대신 세 가지 역할로 일하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 역사 속 수평 조직의 실패는 맥락을 전파할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조직의 정보 유통 속도를 끌어올리려면 위계 자체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2천 년 동안 이어진 조직의 병목을 짚어봅니다
회사가 커질 때마다 일은 왜 점점 느려질까요. 사람이 늘어날수록 회의가 잦아지고, 보고서를 올리고 승인을 기다리는 시간은 계속 길어집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개별 직원 손에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쥐여 줍니다. 글을 더 빨리 쓰고 코드를 더 매끄럽게 다듬으면 조직 전체도 빨라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이 도구를 쓴다고 해서 여러 부서가 조율되는 속도나 의사결정 방식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보고 체계와 중간 관리 계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정보는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쳐 느리게 오르내립니다.
2026년 3월 31일, 글로벌 금융 기술 기업 Block(옛 Square)의 창업자 Jack Dorsey와 벤처캐피털 Sequoia Capital의 매니징 파트너 Roelof Botha는 공동 에세이 “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를 통해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회사의 공식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이 글은 기존의 위계적 보고 체계를 걷어내고, 회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지능 시스템, 즉 “mini-AGI”로 다시 짓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명확합니다. 인간이 정보를 전달하고 조율하느라 생기는 마찰을 인공지능 기반 지능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굳이 전통적인 위계 조직을 유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역사 속 수평 조직 실험들은 실패했을까
군대나 기업 같은 대규모 집단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 한계에 묶여 있었습니다. 한 명의 리더가 직접 효과적으로 지휘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보통 3명에서 8명 안팎입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통제 범위(span of control)라고 부릅니다.
역사상 등장한 모든 조직 모델은 이 제약을 어떻게든 우회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고대 로마 군단은 병사 8명으로 텐트 하나를 쓰는 contubernium 단위를 만들고, 이를 모아 백인대(century)를 꾸렸으며, 다시 이를 묶어 군단(legion)을 세웠습니다. 19세기 프로이센 참모본부의 참모 조직, 미국 초기 대형 철도 회사의 조직도, 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법, 2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된 McKinsey의 매트릭스 구조 역시 통제 범위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위계를 겹겹이 쌓아 올린 결과였습니다.
여기에는 항상 딜레마가 따랐습니다. 통제 범위를 좁히면 관리 계층이 늘어나 정보가 위아래로 오가는 데 한참이 걸립니다. 반대로 계층을 과감하게 없애면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해 조직 전체가 조율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졌던 대담한 실험들도 비슷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Spotify의 자율적인 스쿼드 모델, Zappos가 시도했던 무관리 조직 체계인 홀라크라시, Valve의 완전 수평 구조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모두 인원이 수천 명 규모로 불어나자 결국 기존의 전통적인 위계 조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계층 사이를 오가며 상황을 전파하고 사전에 조율해 주던 중간 관리자를 대신할 현실적인 정보 전달 수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조직에서 중간 관리자는 각 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추적하고, 상하좌우로 맥락을 번역해 나르며, 조율을 위한 회의를 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씁니다. Jack Dorsey와 Roelof Botha는 위계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보 전달 장치일 뿐이며, 늘어나는 중간 관리 계층이야말로 정보 흐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능 시스템으로 회사를 굴리는 네 가지 기둥
Block은 중간 관리자가 정보를 중계하는 대신,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지능 시스템이 조직 전체의 맥락을 연결하도록 회사의 구조를 네 가지 구성 요소로 완전히 다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역량(capabilities)입니다. 결제, 대출, 카드 발급, 뱅킹, 선구매 후결제(BNPL), 급여 관리 같은 아주 기본적이고 원자 단위인 금융 기능들을 뜻합니다. 이 역량들은 자체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 화면을 따로 두지 않습니다. 독립된 앱 화면을 꾸미는 대신 시스템 내부에서 신뢰성, 규제 준수, 처리 성능 목표에 맞춰 엄격하게 관리되는 부품처럼 작동합니다.
둘째는 월드 모델(world model)입니다. 현실 세계와 조직 내부의 상태를 지능 시스템이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로 빚어낸 거울과 같습니다. Block의 월드 모델은 안과 밖, 두 영역으로 나뉩니다.
- 회사 월드 모델: 원격 근무 체제에서 매일 쏟아지는 결정 사항, 논의 기록, 작성된 코드, 화면 디자인, 이슈 트래커의 등록 내역을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전부 모읍니다. 이를 통해 지금 회사 안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고 어디에서 일이 막혔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합니다. 중간 관리자가 주간 보고서나 현황 공유 회의로 전하던 상황 맥락을 시스템이 통째로 쥐고 있는 셈입니다.
- 고객 월드 모델: 구매자가 쓰는 Cash App과 판매자가 쓰는 Square 양쪽에서 발생하는 수백만 건의 금융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됩니다. 설문조사 응답이나 단순한 광고 클릭 기록은 왜곡되기 쉽지만, 실제로 오가는 돈의 흐름은 고객과 가맹점의 재무 상태를 정직하게 보여 주는 신호가 됩니다. 시스템은 정직한 신호인 돈의 흐름에서 끊임없이 학습하며 고객과 가맹점의 재무 상태를 규명하는 인과 모델과 미래 상황을 내다보는 예측 모델을 구축합니다.
셋째는 지능 계층(intelligence layer)입니다. 고객 월드 모델이 고객의 특정한 사정을 포착하면, 지능 계층은 여러 기본 역량을 동적으로 조립해 고객 맞춤형 해법을 먼저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의 한 식당이 계절적 비수기를 앞두고 현금 흐름이 빠듯해질 조짐이 보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지능 계층은 사장님이 자금을 구하러 다니기 전에 이를 먼저 감지합니다. 그리고 대출 역량에서 필요한 단기 자금을 끌어오고 결제 역량을 활용해 상환 조건을 맞춥니다. 사장님이 대출 상품을 검색하기도 전에 식당 상황에 딱 맞춘 조건으로 제안을 띄우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기획자가 책상에 앉아 가설을 세우고 고정된 중장기 제품 계획표를 짤 필요가 없습니다. 지능 계층이 고객에게 필요한 해결책을 조립하려다 실패하는 순간, 즉 필요한 역량이 없어서 조합하지 못했다는 신호 자체가 회사가 다음에 무엇을 개발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개발 목록(백로그)이 되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인터페이스(interfaces)입니다. Square, Cash App, Afterpay, 음원 플랫폼 TIDAL, 비트코인 지갑 Bitkey처럼 고객이 손끝으로 만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접점을 의미합니다. 이 화면들은 지능 계층이 조립해 낸 해결책을 겉으로 드러내 전달하는 창구에 불과합니다. 실제 가치는 화면 자체가 아니라 그 아래에서 돌아가는 월드 모델과 지능 계층에 있습니다.
사람은 시스템과 현실이 맞닿는 최전선으로 이동합니다
지능이 시스템 자체에 녹아들면 사람의 일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Block은 사람의 역할을 시스템이 현실 세계와 직접 맞닿는 최전선(edge)으로 옮겼습니다. 인공지능 모델이 넘볼 수 없는 직관, 문화적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 윤리적인 선택, 그리고 회사의 존립이 걸려 있는 아주 중대한 의사결정에 사람의 판단력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설 중간 관리자 계층은 사라집니다. 대신 조직의 모든 사람은 세 가지 역할 중 하나로 일합니다.
첫 번째 역할은 개별 기여자(IC, Individual Contributor)입니다. 역량, 월드 모델, 지능 계층, 인터페이스를 직접 깊이 있게 설계하고 만드는 전문가들입니다. 관리자가 내려 주는 지시나 승인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회사 월드 모델이 조직 전체의 맥락과 우선순위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전달해 주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 영역 안에서 스스로 상황을 보고 바로 결정을 내립니다.
두 번째 역할은 직접 책임자(DRI, 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입니다. 여러 팀과 기능 조직을 가로지르는 문제나 구체적인 고객 성과를 온전히 책임지는 리더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가맹점 층의 이탈률을 낮추기 위한 90일 집중 과제’ 같은 임무가 주어지면, DRI는 월드 모델 팀, 역량 개발 팀, 인터페이스 팀을 넘나들며 필요한 자원을 직접 끌어와 실행합니다. 그리고 목표가 해결되면 팀을 깨끗이 해산하고 다음 문제로 이동합니다. 직책을 지키는 관리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소방관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 역할은 플레이어-코치입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코드나 모델,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손수 일하는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동료들의 역량을 함께 키워 주는 멘토입니다. 이들은 상태 점검 회의나 부서 간 조율 회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일의 정렬은 회사 월드 모델이 잡아 주고, 큰 전략적 조율은 DRI가 맡아 주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코치는 현황 보고 대신 오로지 전문 기술과 동료 육성에만 몰두합니다.
초기 단계의 선언과 남겨진 과제
Jack Dorsey와 Roelof Botha는 Block이 아직 이 거대한 전환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중간 관리자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과 조직 과정이 안착하기 전까지는 여러 곳에서 마찰이 생기고 시스템이 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 방향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내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려, 조직이 거대해진 뒤에도 초기 스타트업 같은 민첩한 실행 속도를 낼 수 있다면 그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복리로 쌓이는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회사 월드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업무 과정이 텍스트와 코드, 이슈 추적 기록처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산출물로 축적되는 원격 근무 문화가 갖춰져야 합니다. 고객 월드 모델 역시 단순 설문이 아닌 실제 거래에 기반한 정직한 신호가 누적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적인 데이터 자산과 체계적인 기록 문화가 없다면 이러한 전환은 근본적으로 제약됩니다. 결국 Block의 방식은 견고한 원격 근무 인프라, 자체 양면 금융 네트워크, API로 표준화된 기본 금융 기능이라는 특수한 조건들이 갖추어졌기에 실행할 수 있었던 공격적인 변화입니다. 더불어 중간 관리자를 없애고 최전선의 개별 기여자(IC)에게 권한을 위임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인재 밀도가 요구되며, 전환 초기 단계에는 소통 공백과 정렬 마찰, 모호해지는 책임 소재와 같은 중대한 위험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사례는 성과 지표를 자랑하는 완결된 보고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전환을 마주한 모든 기업 리더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언어 모델을 도입해 개인의 문서 작성 속도를 몇 퍼센트 올리는 데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정보가 흐르는 조직의 통로 자체를 뜯어고칠 것인가. Block의 실험은 인공지능이 진정으로 조직의 맥락을 유통하기 시작할 때, 2,000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피라미드형 위계와 중간 관리자의 쓰임새가 어떻게 다시 쓰일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출처
Block Inside — 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 — https://block.xyz/inside/from-hierarchy-to-intelligence — 202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