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Field Notes

에세이2026-11-05

코드가 싸지면 개발자는 무엇을 파는가

현장의 문제를 알고 고객의 지표를 책임지는 일

게시
2026-11-05
팟캐스트 영상 · 28분
AX 필드노트 팟캐스트 · 두 진행자가 이 사례를 풀어 봅니다 · 영상과 음성은 AI로 만들었습니다전체 에피소드 ↗

요약

  • AI가 코드 작성 비용을 떨어뜨리면서 소프트웨어 공급은 넘쳐나고 수익은 양극화되고 있다.
  • 명세를 코드로 옮기던 일은 줄어들고, 무엇을 만들지는 현업 실무자가 결정한다.
  • 특정 고객의 문제와 지표를 책임지는 개발자가 시장 위에 남고, 일하는 개발자가 옮겨 갈 곳도 거기다.

코드는 더 이상 비싸지 않다

몇 년 전 재고와 주문, 배송, 고객 관리를 한 번에 다루는 시스템을 만들려 했던 한 중견 유통업체를 떠올려 보자. 외주 개발사는 수억 원의 견적과 1년의 기간을 불렀다. 기성 ERP를 도입하는 대안도 검토했지만, 남이 만든 소프트웨어에 맞춰 회사의 업무 방식을 통째로 뜯어고쳐야 했다. 비용이 싸지도 않았다. 비슷한 처지의 회사 대부분은 두 길 모두 포기하고 스프레드시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높은 개발 비용은 시장의 높은 문턱이었고, 개발자들은 그 덕을 보았다. 명확하게 떨어진 요구사항을 코드로 옮기기만 해도 넉넉한 보수를 챙길 수 있던 시절이었다.

코딩 에이전트가 퍼지면서 이 문턱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AI와 함께 일하는 개발자 한 명이 예전에는 여러 사람이 나누어 하던 일을 혼자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턱을 낮춘 것은 이러한 변화이지, 외주 개발사가 값을 내린 것이 아니다. 본래 외주사는 사람의 노동을 달 단위로 쪼개어 파는 사업이며, 한국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은 지금도 투입 인원수와 경력으로 비용을 매긴다. 업계 스스로도 AI가 개발 생산성을 높일수록 머릿수를 기준으로 삼던 인건비 산정 근거가 무너진다고 토로한다. 외주 개발사는 변호사 시간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로펌이나 상담원 인원수로 계약하는 콜센터 아웃소싱과 같은 처지다. 투입 인력 수로 돈을 받다 보니, AI로 일이 빨라질수록 청구할 금액이 줄어드는 모순에 맞닥뜨리고 있다. 결국 달라진 것은 개발 단가가 아니라, 이 일을 맡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앞서 떠올려 본 유통업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지금이라면 AI를 활용하는 개발자 한 명이 기획과 디자인, 개발을 혼자 도맡아 외주사 견적보다 훨씬 싼값에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 회사는 고유한 업무 방식을 지키면서도 감당할 만한 비용으로 맞춤형 관리 시스템을 갖춘다. 과거 외주사에서 월급을 받았을 개발자라면 이런 고객 몇 곳만 확보해도 기존 연봉을 훌쩍 넘는 수입을 올린다. 외주사는 단가를 낮추며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일감 자체를 잃고 있다.

시장의 변화는 수를 세기 쉬운 소비자용 앱 시장을 보면 더욱 또렷하다. 2026년 상반기 애플 앱스토어(App Store)에 새로 올라온 앱은 1년 전보다 약 두 배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다운로드 건수는 2% 늘어난 176억 건에 그쳤다.

신규 앱 출시와 다운로드 증가율
0100200신규 앱 출시약 2배다운로드+2%2025년 상반기 = 1002026년 상반기
2026년 상반기 애플 앱스토어의 신규 출시 앱은 약 56만 개로 전년 동기 대비 약 두 배 늘었으나, 다운로드는 176억 건으로 2% 증가했다. (출처: 센서타워, 뉴욕타임스)

공급이 쏟아져 나오는데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면 수익은 얇게 흩어질 수밖에 없다. 스트라이프(Stripe)에서 1인 창업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인 창업자가 사업을 시작한 뒤 첫 6개월 동안 거둔 매출의 중간값은 2025년에 전년 대비 23% 줄었다. 같은 기간 상위 10%의 매출은 오히려 19% 늘었다.

1인 창업자의 창업 초기 매출 변화
-20%0+20%상위 10%+19%중간값-23%
2025년 스트라이프 아틀라스 1인 창업자의 창업 후 첫 6개월 매출은 2024년 대비 중간값이 23% 줄어든 반면 상위 10%는 19% 늘었다. 상위 10%와 중간값의 매출 격차는 4년 전 34배에서 2025년 61배로 벌어졌다. (출처: 스트라이프)

소프트웨어 시장도 책이나 음악, 게임 산업이 겪었던 분배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만드는 사람은 넘쳐나고, 그럭저럭 먹고살 만큼 벌던 이들은 줄어들며, 소수의 승자가 수익을 크게 가져가는 구조다.

기획서를 코드로 바꾸던 역할이 먼저 줄어든다

기업 내부에서도 바깥 시장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한 조직 안에서 잘게 쪼개진 티켓을 받아 코드로 옮기던 개발자부터 밀려나는 중이다.

아마존(Amazon) 최고경영자는 엔지니어 6명이 베드록(Bedrock)의 새 엔진을 76일 만에 만들었다고 밝혔다. 보통의 방식이었다면 40명 안팎의 팀이 1년쯤 매달려야 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같은 글에서 결정을 더 빠르게 내리기 위해 조직을 이미 평평하게 바꿨다고 밝혔다. 코인베이스(Coinbase) 역시 최고경영자 아래 관리 단계를 다섯 단계로 제한하고, 조직을 작은 ‘AI 네이티브 팟’ 형태로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거대 조직 안에서 기계적으로 코드만 작성하던 개발자는 이제 이런 기업들에게 가장 덜 필요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채용 시장의 흐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진입로인 신입 채용문이 가장 빠르게 닫히는 중이다. 2026년 1분기 인디드(Indeed)에 올라온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 공고 가운데 신입 대상은 4.5%에 불과했고, 시니어 공고는 69.3%에 달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경력 3년 미만의 소프트웨어 인력은 줄어든 반면 경력직은 늘어났다.

팀 규모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스택오버플로(Stack Overflow)의 2026년 조사에 따르면 1인 조직으로 일하는 개발자 비율이 불과 1년 만에 4%에서 10%로 뛰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처리하던 일감이 점점 한 사람과 AI에게 모이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알고리즘을 논하거나 말끔하게 정리된 명세서를 말끔한 코드로 옮기던 개발자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권한의 이동

명세를 코드로 옮기는 일이 줄어드는 동안, 정작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IT 부서를 벗어나 실제 업무를 아는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앤트로픽(Anthropic)이 자사 코딩 에이전트의 활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작업 성공률을 끌어올린 요인은 코딩 실력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대한 업무 지식이었다. 실제로 이 도구를 가장 빠르게 도입하는 사용자층도 경영, 영업, 법무 분야의 실무자들이다.

소프트웨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현업 담당자들이 결정한다. 다만 그것을 실제 사업 환경에서 문제없이 굴러가게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실제로 사업 현장에서 움직인 곳도 있다. 직원 65명 규모의 한 수처리 회사는 5인 스타트업과 손잡고 1만 5,000~2만 달러를 들여 자체 CRM을 구축했다. 기존에 쓰던 세일즈포스(Salesforce)를 걷어내고 대체한 것이다.

개발자는 대개 시스템에 탈이 난 뒤에야 뒤늦게 불려 간다. 국내 프리랜서 마켓 크몽에서 바이브코딩으로 만든 소프트웨어와 관련해 들어온 의뢰는 반년 만에 6배 넘게 늘었다. 대부분 검수와 부분 보완을 요청하는 일감이었다. 의뢰인들이 가장 크게 부딪힌 벽은 배포, 데이터 구조, 시스템 안정화였다.

개발자가 호출을 받을 때쯤이면 고객은 이미 자기 문제를 정의해 두었고, 데이터를 확보한 채 무엇을 만들지까지 정해 놓은 뒤다.

다른 분야 실무자와 대화하는 법을 익히라는 뻔한 조언으로는 지금의 변화를 버텨낼 수 없다. 제값을 받는 개발자로 남으려면 문제가 정의되는 바로 그 출발선에 함께 서 있어야 한다.

고객의 핵심 숫자를 책임지는 사람들

데이터를 뜯어보면 시장 위쪽에 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뛰어난 코딩 실력이 아니다. 돈을 지불하는 고객의 문제와, 그 문제를 측정하는 지표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스트라이프 통계에서 상위 10%에 든 1인 창업자들은 기업 고객 쪽으로 더 기울었고, 처음부터 해외에 팔았다. 이들의 고객 중 약 30%는 다음 달에 다시 찾아왔다. 중간 수준 창업자의 경우 이 비율이 8%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은 누가 서비스를 다시 찾고 누가 지갑을 여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파고들며 제품을 다듬어 가는 사람들이다.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가설을 검증하는 실험 비용이 크게 낮아진 환경에서, AI는 이런 이들에게 든든한 지렛대가 된다.

메인비즈협회가 307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시사점이 분명하다. 기업들이 AI를 도입하고 구축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걸림돌은 실제 업무 방식에 시스템을 맞추는 일(44.6%)과 기존 데이터 및 시스템을 연결하는 일(38.5%)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코드 구현이 아니라 해당 사업의 맥락을 깊이 이해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다.

해당 조사에서 기업들은 외부 전문 인력을 새로 채용하기보다 기존 직원을 AI 담당자로 육성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했다. 결국 이들을 돕는 개발자의 역할은 직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업 직원과 발을 맞춰 협업하는 데 있다.

물론 현장에는 불안도 흐른다. 제조, 유통, IT, 금융 분야 종사자 822명을 조사한 결과, 실무자는 임원보다 AI 도입에 대해 더 큰 불안감을 나타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자신의 일자리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런 기업의 운영 방식을 바꿔 보려는 개발자라면 재고와 고객,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오래 현장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신뢰가 먼저다. 회사가 선뜻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바로 그 현장에 대한 이해다.

고객의 사업 문제를 직접 풀어내는 개발자들

남이 정리해 준 요구사항을 받아 코드로 옮기던 개발 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다시 늘어나기도 어렵다. 고객의 문제와 떨어진 채 구현을 도맡아 온 개발자의 입지가 좁아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시장의 위쪽에서 높게 평가하는 자산은 경력 개발자에게 이미 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산업 안에서 실제 고객과 부딪히며 결제가 실패하는 까닭을 보고, 배송 지연을 수습하고, 사용자가 어떤 화면에서 지쳐 떠나는지를 겪어 온 시간이다.

앞서가는 개발자들은 명세를 코드로 바꾸는 기술 자체를 시장에 팔지 않는다. 한 분야로 깊이 들어가 매출이나 고객 유지율, 주문당 처리 비용처럼 고객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과를 자기 일의 기준으로 삼고 책임진다.

어떤 이는 중소기업의 현장으로 들어가 운영 방식을 다시 만들고, 어떤 이는 회사 안에서 특정 제품의 성장을 온전히 도맡는다. 한 산업을 겨냥해 범위를 좁힌 제품을 내놓고 떠나는 고객을 살피는 사람들도 있다. AI 네이티브 회사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업 그 자체가 된다. Crosby는 핀테크 기업 Ramp의 엔지니어링 리드 출신과 대형 로펌 Cooley 변호사 출신이 함께 세운 로펌이다. 상업 계약서 검토만 하며, 변호사가 일한 시간(청구 가능 시간)이 아니라 계약서를 받아 최종 수정본을 돌려주기까지 걸린 전체 처리 시간을 기준으로 운영한다. Harper의 창업자들은 처음에 보험 중개인에게 AI 소프트웨어를 팔려 했으나, 그 생각을 접고 스스로 면허를 가진 보험 중개 회사가 되었다. 1인 개발 스튜디오나 에이전시로 독립하든 회사에 적을 두고 일하든 이들이 하는 일은 같다.

소프트웨어는 싸졌다. 싸지지 않은 것은 특정 고객이 돈을 내고 계속 쓸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 아는 안목이다. 앞으로 개발자가 벌어들일 돈은 바로 그 안목에서 나온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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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9to5Mac, “Report: App Store added nearly as many new apps in H1 2026 as in all of 2025” (2026-07-20, Sensor Tower data via The New York Times) https://9to5mac.com/2026/07/20/report-app-store-added-nearly-as-many-new-apps-in-h1-2026-as-in-all-of-2025/
  3. Stripe, “Solo founding is at an all-time high: Top performers have these traits in common” (2026-05-28) https://stripe.com/blog/top-solo-founder-traits
  4. Amazon, “Amazon CEO Andy Jassy’s 2025 Letter to Shareholders” (2026) https://www.aboutamazon.com/news/company-news/amazon-ceo-andy-jassy-2025-letter-to-shareholders
  5. DL News, “Coinbase shares pop as CEO Brian Armstrong cuts 700 jobs and blames AI” (2026-05-05) https://www.dlnews.com/articles/markets/coinbase-cuts-jobs-and-blames-artificial-intelligence/
  6. 서울신문, “AI 시대, 소프트웨어 개발자 신입 일자리 소멸 중” (2026-01-06)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6/01/06/20260106500238
  7. Stack Overflow, “The results of the 2026 Developer Survey are here!” (2026-10-06) https://stackoverflow.blog/2026/10/06/the-results-of-the-2026-developer-survey-are-here/
  8. Indeed Hiring Lab, “The Labor Market Is Tilting Toward Seniority” (2026-07-23) https://hiringlab.indeed.com/2026/07/23/the-labor-market-is-tilting-toward-seniority/
  9. Anthropic, “Agentic coding and persistent returns to expertise” (2026-06-16) https://www.anthropic.com/research/claude-code-expertise
  10. The Wall Street Journal (Dow Jones copy), “Meet the Companies Vibe Coding Their Own CRMs” (2026-03) https://www.itiger.com/news/2617554134
  11. 벤처스퀘어, “크몽, AI로 코드는 만들었는데 출시는 막혔다…’바이브코딩 후속 개발’ 반년 새 550% 증가” (2026-10-02) https://www.venturesquare.net/1117623
  12. 아시아투데이, “중소기업 AI 도입 필요성 71%…실행은 17% 그쳐” (2026-11-02)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1102010000537
  13. 스타트업엔, “실무자 3명 중 1명 “AI 도입이 더 불안”…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축소’” (2026-02-10) https://www.startupn.kr/news/articleView.html?idxno=56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