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Field Notes

에세이2026-10-22

AI 네이티브 스타트업의 습격

도구를 팔던 회사가 산업 자체가 되는 전환의 본질

게시
2026-10-22

모바일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일어난 산업 재편을 기억한다. 스마트폰이 보급되자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쏟아져 나와 기존 산업을 집어삼켰다. 당시 시장을 주름잡던 기업 가운데 모바일에 적응해 성공적으로 거듭난 사례는 찾기 힘들었다. 그 자리는 모바일 환경에서 태어난 새로운 기업들이 유니콘이 되어 차지했다.

지금 인공지능(AI) 기술이 무르익으면서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기존 기업이 내부에서 AI 전환을 이루기 전에, 처음부터 AI 에이전트(사람이 맡긴 일을 여러 단계에 걸쳐 스스로 이어서 처리하는 AI 프로그램)를 축으로 세운 ‘AI 네이티브’ 스타트업들이 산업 현장을 파고든다.

두 장면은 몹시 닮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고,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이번 재편은 모바일 때보다 기존 강자들에게 훨씬 더 아프다. 모바일 시절 O2O 기업은 기존 산업 위에 올라타 고객이 들어오는 입구를 쥐었지만, 지금의 AI 네이티브는 도구를 파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일 자체를 직접 처리한다. 즉, 기존 산업 위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업 자체가 되고 있다.

1. 모바일 때 기존 강자가 잃은 것

O2O 기업은 뛰어난 생산 기술로 기존 산업을 이긴 것이 아니라, 고객이 주문하는 입구를 선점해 승자가 되었다.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오프라인에서 서비스를 받게 해 주는 O2O 모델은 택시의 Uber와 카카오택시, 숙박의 Airbnb, 음식 배달의 배달의민족으로 대표된다.

이들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했을 때도 일 자체를 하는 주체는 바뀌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았고 식당은 여전히 음식을 조리했다. 플랫폼은 그들이 일하는 현장 위에서 주문을 받아 넘겼다. 일은 오프라인 사업자가 도맡았지만, 시장의 주도권과 기업가치는 입구를 쥔 플랫폼으로 단숨에 쏠렸다.

2020년 12월 Airbnb가 상장한 첫날, 종가 기준 기업가치는 세계 3대 상장 호텔 체인인 Marriott, Hilton, Hyatt를 모두 합친 것보다 컸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 12월 독일 Delivery Hero에 약 40억 달러의 기업가치로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거대한 자산과 수많은 직원을 거느린 전통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하나로 무장한 신생 플랫폼에 밀려났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혁신기업의 딜레마』(1997)에서 시장을 이끌던 기업이 신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라, 당장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과 사업 방식을 지키려다 밀려난다고 짚었다. 자기 수익 모델을 스스로 무너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바일 혁명기의 기존 기업들도 그렇게 고객과의 접점을 통째로 내주었다고 나는 본다.

그러나 그때는 기존 강자들에게 최소한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고객 접점을 잃어 플랫폼에 수수료를 낼지언정, 일을 직접 수행하는 공급자라는 자리는 지켰기 때문이다.

2. 이번에는 일을 직접 한다

지금 등장하는 AI 네이티브는 기존 산업 위에 올라타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나 도구를 팔던 회사가 스스로 그 일을 해내는 회사가 되고 있다.

은행, 자산운용사, 보험사 같은 금융회사의 법무·컴플라이언스 팀에 AI 에이전트를 공급해 온 Norm Ai의 행보가 이를 보여 준다. 이 회사는 도구 판매에 그치지 않고 2025년 11월 AI 네이티브 로펌인 Norm Law를 직접 출범시켰다. AI 에이전트가 계약 검토 같은 법률 실무를 도맡고, 자격을 가진 변호사가 최종 승인하는 방식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4년 창업한 보험 중개사 Harper 역시 마찬가지다. 창업자들은 기존 중개사에게 AI 도구를 파는 사업 모델을 고민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직접 면허를 취득해 중개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도구를 쥐여 주는 대신 중개 업무 자체를 직접 하기 위해서다.

AI 고객지원 회사인 Crescendo의 움직임은 더 급진적이다. 직원 20명 남짓이던 2024년 10월, 3,000여 명이 일하던 고객지원 아웃소싱 회사 PartnerHero를 전격 인수했다. Crescendo를 세운 투자사 General Catalyst는 이를 두고 서비스 회사를 인수해 AI로 재편하는 ‘벤처 바이아웃(Venture Buyout)‘이라 부른다.

벤처캐피털 Foundation Capital은 도구가 아니라 일의 결과를 직접 파는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ervice as software)’ 시장 규모를 4조 6,000억 달러로 추산한다.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시장보다, 사람이 하던 서비스 시장의 덩치가 훨씬 크다는 계산이다.

모바일 시절에는 기존 사업자에게 일감을 넘겨받는 공급자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AI 네이티브가 파고드는 영역에서는 고객 접점뿐 아니라 기존 기업이 팔던 일 그 자체가 스타트업 내부로 흡수된다. 기존 기업에 남겨진 자리가 그때보다 훨씬 좁아질 수밖에 없다.

3. 왜 도구를 팔지 않고 직접 하는가

스타트업들이 도구를 파는 소프트웨어 회사에 머물지 않고 서비스를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과 인원으로 돈을 받는 회사에 AI 도구를 파는 것은, 사는 쪽이 제품을 쓰지 않을수록 이득인 모순된 물건을 파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로펌은 변호사가 일한 시간(빌러블 아워)에 맞춰 비용을 청구하고, 콜센터 아웃소싱(BPO) 기업은 투입하는 상담원 수에 맞춰 고객사와 계약한다. 이 구조에서 AI를 도입해 일 처리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고객사의 생산성이 오르기 전에 로펌과 콜센터의 청구 매출부터 반토막이 난다. 기존 사업자에게 효율을 극대화하는 소프트웨어는 자기 목을 조르는 도구다.

반면 AI 네이티브 기업은 가격을 매기는 기준부터 바꾼다. Norm Law를 세운 Norm Ai의 창업자는 거래 하나, 검토할 계약서 한 건 같은 일의 단위로 미리 가격을 정한다고 설명한다. 투입한 시간이 아니라 결과물 자체에 값을 매긴다. Crescendo 역시 상담 시간이 아니라 해결한 문의 건수마다 요금을 받는다. AI가 먼저 고객 문의를 받아 처리하고, 풀지 못한 문의만 사람 상담원에게 넘긴다.

AI가 만들어 낸 압도적인 생산성의 과실은 도구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가격 구조를 직접 쥐고 흔드는 회사가 가져간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도구 판매사로 남아 구매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서비스를 직접 틀어쥔다.

모바일 시절 택시 면허와 호텔 객실 같은 물리적 자산이 혁신을 막아서는 벽이었다면, 지금은 시간당 요금제와 투입 인원 기준 계약이라는 수익 모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크리스텐슨이 경고한 혁신기업의 딜레마가 더 선명한 형태로 되살아난 셈이다.

4. 안에서 부딪히는 벽

이러한 수익 모델의 모순을 내부 직원 관점에서 바라보면 극심한 조직적 반발로 터져 나온다. 시간을 상품으로 팔아 온 회사에서 “AI를 도입해 더 빨리 일하자”는 경영진의 외침은 직원들에게 “내 일하는 시간과 내 자리를 줄이자”는 위협으로 들린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28개국에서 고객지원을 대행하는 BPO 기업 Konecta가 겪은 진통이 단적인 예다. 현장 상담원에게 AI 도입은 일자리 축소와 직무 불안으로 다가왔다. 상담원 수를 기준으로 사업을 키워 온 영업진과 운영진 역시 매출 구조가 흔들리는 새 방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회사는 성패의 10%는 알고리즘, 20%는 데이터와 기술, 70%는 사람과 일하는 방식에 달렸다는 BCG의 10-20-70 원칙을 도입했다. 경영진부터 일선 상담원까지 다시 가르치는 사내 교육 기관 Konecta Academy를 세우고, 사람 상담원과 AI 에이전트 사이의 업무 배분과 인계 품질을 감독하는 ‘하이브리드 에이전트 매니저’ 직무를 새로 만들었다. 12개월 동안 80개가 넘는 생성형 AI 기능을 현장에 투입했고 AI를 쓰는 직원이 25,000명을 넘었다.

시간을 상품으로 팔지 않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AI 개발 도구를 만드는 Warp의 CEO는 자기가 만든 사용 지침을 3개월 넘게 직접 지키며 직원들에게 보여 줘야 했고, 금융 회사 Affirm은 일하는 방식을 바꾼 엔지니어가 수십 명에 그치고 나머지 800명은 그대로이자 일주일 동안 필수가 아닌 회의와 출시를 멈추고 모두가 에이전트로 코드를 올리게 강제했다.

중고차 거래 회사 Kavak은 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22년 말 직원을 돕는 AI 보조 도구(코파일럿)를 여럿 배포했으나 직원들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자 CEO는 코파일럿 단계를 아예 건너뛰고 AI 에이전트를 고객 응대 최전선에 바로 세웠다. 실패하더라도 사람 상담으로 되돌린다는 대안은 두지 않았다. 회사는 그 대가로 2023년 한 해 동안 매출 성장이 완전히 멈추는 혹독한 비용을 치렀다. 현재 Kavak의 고객 응대 90~95%는 AI 에이전트가 처리하며, 1만 명이던 직원은 약 3,500명으로 줄었다.

Kavak이 택한 길은 스타트업이 외부에서 벌이는 일, 즉 도구를 쥐여 주지 않고 일 자체를 에이전트에게 통째로 넘기는 방식을 내부에서 밀어붙인 사례다. 그 과정에서 치른 대가는 막대했다. 반대로 Konecta처럼 사람의 자리를 새로 정의하며 전환하는 길은 더딜 수밖에 없다.

AI 네이티브의 진정한 무기는 창업자나 엔지니어가 기존 기업 인력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다. 누구의 급여나 평가도 투입한 노동 시간에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 그 자체다. 기존 기업을 가로막는 거대한 내부 저항의 벽이 AI 네이티브에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5. 기존 강자에게 남은 패

그렇다면 기존 기업은 이 싸움에서 무력하게 밀려날 수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AI 네이티브 기업이라 해도 마지막 서명과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맡긴다. 앞으로 시장에서 가장 귀해지는 자원은 일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며, 그 자원은 기존 기업이 이미 손에 쥐고 있다.

Norm Law를 세운 Norm Ai의 창업자는 “자격 변호사의 감독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Harper 역시 서류 작성과 고객 후속 연락은 AI 에이전트에게 맡기지만, 최종 결정은 면허를 가진 사람이 내린다. 이 회사가 채용하는 시니어 중개사와 인수 심사역(보험사에서 보험을 받을지 심사하는 사람) 경력자들은 고객을 일일이 상대하는 대신 AI의 평가 기준과 업무 배분 규칙을 설계한다. Crescendo 또한 AI 에이전트가 개선한 고객 응대 방식을 현장에 실제로 내보내기 전에 반드시 사람의 승인을 거치도록 설계했다.

Crescendo가 PartnerHero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법적 자격을 증명하는 면허, 오랜 시간 쌓아 온 기존 고객 네트워크, 실제 업무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핵심인 산업에서는 바깥에서 진입하는 것보다 기존 기업을 인수해 안에서부터 다시 짜는 편이 빠를 수 있다.

물론 지금의 AI 네이티브 기업들은 대체로 2023년에서 2025년 사이에 세워진 초기 기업들이다. 업력이 짧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성과의 상당수도 아직은 자체 주장에 머물러 있다.

스타트업이 사들여야 하는 것들, 즉 제도적 면허, 충성 고객, 결과에 서명하고 책임질 숙련된 인력을 기존 강자는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를 여전히 시간 단위나 투입 인원 기준으로 팔고 있다면 머지않아 일 자체를 빼앗기겠지만, 결과와 책임을 기준으로 값을 매기는 사업 모델로 전환한다면 기존 기업이 쥔 패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자 무기가 된다.

맺음 — 무엇으로 돈을 벌고 있는가

산업 재편은 이제 시작 단계다. 바깥에서 시장을 집어삼키는 AI 네이티브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을 인수해 내부를 통째로 뜯어고치는 스타트업이 동시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모바일 혁명기 때 기존 기업에게 모자랐던 것은 모바일 코딩 기술이 아니었다. 당장의 이익을 깎아 먹더라도 기존 사업 모델을 스스로 부수고 다시 짤 결단력이 없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때처럼 고객 접점만 잃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일 자체를 AI 네이티브가 가져가 버려 공급자라는 자리조차 남지 않게 된다.

기존 산업의 리더라면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고객에게 투입한 시간을 팔고 있는가, 아니면 책임 있는 결과를 팔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다음 차례는 당신의 산업이다.

참고 자료

  1. Bisnow, “After IPO, Airbnb Is Now Worth More Than Marriott, Hilton And Hyatt Combined” (2020-12-10)
    https://www.bisnow.com/national/news/hotel/airbnb-valuation-skyrockets-huge-ipo-107052
  2. City A.M., “Delivery Hero takes a bite out of Asian market with $4bn Woowa deal” (2019-12-13)
    https://www.cityam.com/delivery-hero-takes-a-bite-out-of-asian-market-with-4bn-woowa-deal/
  3. Clayton M. Christensen, The Innovator’s Dilemma (1997)
  4. Foundation Capital, “AI leads a service as software paradigm shift”
    https://foundationcapital.com/ai-service-as-software/
  5. AX Field Notes, AI 네이티브: Norm Law, Harper, Crescendo
    https://ax.yumes.net/ko/natives/norm-law/
    https://ax.yumes.net/ko/natives/harper/
    https://ax.yumes.net/ko/natives/crescendo/
  6. AX Field Notes, 사례: Konecta, Warp, Affirm, Kavak
    https://ax.yumes.net/ko/cases/konecta-bcg/
    https://ax.yumes.net/ko/cases/warp-firstround/
    https://ax.yumes.net/ko/cases/affirm-retooling-week/
    https://ax.yumes.net/ko/cases/kavak-a16z/
  7. BCG X, “How One CX Provider Scaled AI Across 28 Countries”
    https://www.bcg.com/x/mark-your-moment/scaling-ai-global-cx-operations
  8. First Round, “Start With a Prompt: Inside How Warp’s CEO Follows His Own AI Coding Mandate” (2025-10-08)
    https://www.firstround.com/ai/warp
  9. Affirm Tech Blog, “How Affirm Retooled its Engineering Organization for Agentic Software Development in One Week” (2026-04-27)
    https://medium.com/affirmengineering/how-affirm-retooled-its-engineering-organization-for-agentic-software-development-in-one-week-1fd35268fde6
  10. a16z Podcast, “From Copilots to Agents: Rebuilding the Company Around AI” (2026-02-18)
    https://a16z.com/podcast/from-copilots-to-agents-rebuilding-the-company-around-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