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2026-10-07
무능한 부장님, 무능한 인간님
AI에게 일을 맡긴 당신은 어떤 상사인가
- 게시
- 2026-10-07

모니터 뒤의 부장님
가상의 인물 하나를 머릿속에 올려놓는다. 팀원의 자리에서 건너다보는 어느 부장님의 모습이다.
부장님은 실무를 잘 모른다. 기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장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팀원이 며칠 밤을 새워 올린 기획서를 받아 들면 내용의 뼈대는 읽어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시선을 둔다. 본문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표 테두리 색상이 튀다거나, 문장 끝맺음이 거칠다는 트집을 잡는다. 알맹이를 짚지 못하니 겉모양만 건드리는 셈이다.
검토를 마쳤다며 기획서를 돌려준 부장님은 자기 모니터 뒤로 숨는다. 조용한 타자 소리가 들려 들여다보면 포털 뉴스 댓글을 읽거나 골프채 쇼핑몰을 오가며 웹서핑을 즐긴다. 그러다 결재판을 들고 임원실로 들어갈 때면 안색이 싹 바뀐다. 팀원들이 밤새 다듬은 분석과 아이디어를 통째로 자기 성과인 양 포장해 보고한다.
결정적인 순간은 사장 앞 발표 자리에서 찾아온다. 팀원들이 정성껏 만들어 준 발표 자료와 스크립트를 들고 연단에 서서 그럴싸하게 읽어 내려간다. 하지만 사장이 장표 한구석의 수치를 가리키며 맥락을 묻는 순간, 부장님의 표정이 굳는다. 자기가 직접 파고든 내용이 아니기에 질문의 뜻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진땀을 흘리며 허둥대다 엉뚱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지켜보는 팀원의 가슴은 답답하게 타들어 간다.
에이전트를 부리는 인간 부장님들
지금 일터에서 AI 에이전트를 다루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방금 떠올린 가상의 부장님과 겹쳐 보이는 장면이 적지 않다. AI 에이전트를 실무 팀원처럼 부릴 수 있게 되자, 사용자 자신이 부장의 자리에 앉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에이전트가 내놓은 결과물의 논리와 사실관계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사람에게 그대로 넘긴다. 검토랍시고 하는 일은 기껏해야 문장의 말투를 바꾸거나 서식을 다듬는 수준이다. 프롬프트를 던져 두고는 일이 돌아가는 동안 유튜브를 보거나 다른 창을 띄워 딴짓을 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에는 자기 이름을 큼지막하게 달아 보고서로 올린다. 그러다 회의실에서 상사나 동료가 “이 근거는 어디서 나온 수치인가?” 하고 물으면 당황하며 입을 떼지 못한다.
이런 태도가 낳는 부작용은 이미 여러 수치와 현장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다.
스탠퍼드 소셜미디어랩과 베터업 랩스 연구진은 2025년 9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워크슬롭(workslop)‘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겉보기에는 번듯하지만 실제로 일을 한 걸음도 진전시키지 못하는 AI 생성물을 뜻한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사무직 응답자의 약 40%가 지난 한 달 사이 이런 워크슬롭을 받아 보았고, 이를 정리하고 처리하는 데 한 건당 평균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게다가 이런 결과물을 보낸 사람을 두고 응답자의 약 절반은 덜 유능하고 덜 신뢰할 만한 동료로 평가했다. 부장님이 벌여 놓은 엉성한 일처리를 팀원이 야근하며 수습하듯, 대충 던진 워크슬롭의 뒷감당을 주변 동료들이 떠안고 있다.
MIT 미디어랩이 2025년에 내놓은 연구 “Your Brain on ChatGPT”는 남의 손을 빌려 일하는 사람의 뇌 상태를 잘 보여 준다. ChatGPT를 활용해 에세이를 쓴 참가자 18명 가운데 15명은 자기가 방금 완성한 글의 내용조차 제대로 인용하지 못했다. 이들은 자기가 낸 결과물에 대한 주인 의식 역시 가장 낮았다. 팀원이 써 준 발표 원고를 영혼 없이 읽어 내려가던 가상의 부장님과 다를 바 없다.
더 큰 문제는 현실의 법정과 계약 현장에서도 터져 나온다. 2023년 미국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의 ‘Mata v. Avianca’ 사건에서 변호사들은 ChatGPT가 지어낸 가짜 판례 여섯 건을 서면에 인용해 법원에 냈다. 상대방과 법원이 해당 판례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하자, 이들은 내용을 검증하기는커녕 AI가 지어낸 가짜 판결문 발췌본을 다시 제출했다. 결국 판사는 해당 변호사들과 로펌에 5,000달러의 제재를 내렸다. 사장의 질문에 허둥대며 엉뚱한 대답을 내놓던 부장님의 모습이 법정에서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 호주 법인의 사례도 있다. 2025년 딜로이트가 호주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44만 호주달러 규모의 보고서에서 연방법원 판결에서 지어낸 인용문과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학술 논문 참고문헌이 발견됐다. 한 대학 연구자가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보고서 수정본에 생성형 AI(Azure OpenAI)를 썼다는 사실이 덧붙여졌고, 딜로이트는 계약 대금의 마지막 회차를 환불하기로 결정했다.
일 잘하는 부장님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가. 유능한 부장님의 업무 방식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유능한 부장님은 일의 본질을 훤히 안다. 자기가 모든 세부 작업을 직접 손으로 하지 않더라도, 결과물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왔는지 판별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다.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는 1983년 저서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에서 “후속 점검 없는 위임은 방기다(Delegation without follow-through is abdication)“라고 썼다. 일을 아랫사람에게 넘겼다고 해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책임은 오롯이 위임한 사람에게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브는 제대로 점검하기 쉬운 일, 즉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일부터 먼저 위임하라고 조언했다.
일을 맡길 때도 태도가 다르다. 유능한 부장님은 팀원에게 일을 넘길 때 목적과 맥락,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결과물이 돌아오면 글꼴이나 줄 간격 같은 껍데기 대신 뼈대를 살핀다. 논리가 맞닿아 있는지, 숫자에 빈틈이 없는지, 제시한 근거가 참인지를 날카롭게 따져 묻는다. 미심쩍은 근거가 보이면 직접 원천 자료를 찾아 대조해 본다.
보고를 올리기 전에는 넘겨받은 내용을 완전히 자기 머릿속에 소화해 넣는다. 사장이 어떤 구석을 찌르고 들어와도 거침없이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결재판을 든다. 일이 잘 풀렸을 때 성과는 실무를 도맡은 팀원에게 돌리고, 문제가 터졌을 때는 자기가 앞장서서 책임을 진다. 그리고 실무자가 작업하는 동안 빈둥거리지 않는다. 그 시간에 팀의 방향을 잡고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등, 오직 관리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어떤 관리자로 남을 것인가
AI 에이전트를 업무에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명의 관리자가 된다. 내 프롬프트 하나에 수많은 초안과 코드를 쏟아내는 지치지 않는 팀원을 거느리게 된 셈이다.
그 팀원을 모니터 맞은편에 두고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알맹이도 모른 채 겉치레만 고치며 시간을 때우다 허둥대는 무능한 부장님으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일의 본질을 쥐고 결과물을 집요하게 검증하며 책임을 다하는 유능한 관리자가 될 것인가.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그 도구를 다루는 인간의 격차가 부장의 자격에서 갈리고 있다.
참고 자료
- Kate Niederhoffer et al., “AI-Generated ‘Workslop’ Is Destroying Productivity”, Harvard Business Review (2025-09-22)
https://hbr.org/2025/09/ai-generated-workslop-is-destroying-productivity - Nataliya Kosmyna et al., “Your Brain on ChatGPT: Accumulation of Cognitive Debt when Using an AI Assistant for Essay Writing Task”, arXiv:2506.08872 (2025)
https://arxiv.org/abs/2506.08872 - Mata v. Avianca, Inc. (S.D.N.Y. 2023-06-22)
https://en.wikipedia.org/wiki/Mata_v._Avianca,_Inc. - AP, “Deloitte to partially refund Australian government for report with apparent AI-generated errors” (2025-10)
https://www.ctvnews.ca/business/article/deloitte-to-partially-refund-australian-government-for-report-with-apparent-ai-generated-errors/ - Andrew S. Grove, High Output Management (1983)